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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석탑 심초석 유물 공개 백제 | 百濟


(서울=연합뉴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리장엄. 사리장엄은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것이다. 2009.1.19 << 문화재청 >>
◆백제 미술의 정수=높이 13㎝짜리 금제사리호는 백제 미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연꽃잎, 당초 무늬와 연주문을 빼곡히 새기는 등 세련되면서도 섬세한 문양이 특징이다. 중국의 사각함과 달리 둥근 몸체에 긴 목을 지닌 사리함을 만든 것도 독특하다. X선으로 촬영한 결과 사리함 안에는 소형 사리병이 안치되어 있고, 외병으로 조립해 고정시킨 이중 구조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이귀영 미술문화재 연구실장은 “사리 문양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백제화시킨 대단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은제관식 은 모자에 꽂았던 장식을 즉석에서 벗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에서 출토된 금동사리호에서 금제사리내호와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추정되는 사리가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금동사리호를 개봉한 결과 그 안에 순금제 사리내호(높이 5.9㎝, 폭 2.6㎝·왼쪽 사진)가 확인됐고, 그 내호 안에서 사리 12과(오른쪽)와 다량의 구슬, 그리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유기질 분말이 들어 있었다”고 2일 밝혔다.

연구소는 "이번에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각종 공양품이 일괄로 출토된 데다 가공수법 또한 정교하고 세련되어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보급 유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붉은 칠(주칠)을 해 글씨가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그 내용은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伽藍)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 출신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명문이 나와 설화로 널리 전파돼온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간 사랑’이 단지 ‘전설’로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글씨는 앞면과 뒷면에서 모두 확인됐다. 앞면에는 1행 9글자씩 모두 11행에 걸쳐 99자를 새겼으며 뒷면에도 11행에 걸쳐 모두 94글자를 적었다.

아직 완전한 판독과 해석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백제 무왕의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 가만히 생각하건데, 法王(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舍利)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大王陛下)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나아가 이 기록에는 "백제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善因)을 심어"라는 구절이 발견됐다. 이 구절은 판독자에 따라서는 "백제 왕후와 사택적덕의 딸"로 읽는 견해도 있어 그 정확한 해석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택(沙宅)'은 당시 백제의 8대 성씨 중 하나다.

◆선화 공주 설화의 허구 가능성=이번에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기록돼 있다. 가람을 건립한 백제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기해년 정월 29일(639년)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고 적혀 있다. 사택씨는 백제 8대 성족의 하나로 부여·공주 일대의 귀족이다. 즉 백제 무왕대에 왕비가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정확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 왕비가 선화 공주가 아닐 가능성도 제기된 것이다. 사택적덕은 현재까지 기록에서 등장한 바 없다.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무왕의 부인이 몇 명인지 모르겠으나 그중 하나가 사택씨임이 밝혀진 것”이라며 “미륵사는 삼원(三院) 형식의 절이라 이번에 발굴된 서탑과 서쪽 가람만 사택씨의 왕후가 짓고, 나머지 가람은 다른 왕후들이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기축년(629년)이란 도장이 찍힌 기와가 이전에 출토된 점을 미뤄보면 중원의 목탑은 미륵사지석탑보다 10년 앞서 건립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 금판이 발굴됨으로써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 연대 등이 정확하게 드러났고, 아울러 문헌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이 시대 백제의 서체(書體)를 연구하는 데도 커다란 획을 긋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송광호 기자 = 백제시절 왕이 주도하는 사리 공양에는 몇급 관리까지 참여했을까.

백제의 4급 관리인 '덕솔'이 공양에 참가했음을 나타내 주는 유물이 국내에서 첫 발견됐다.

이는 사리 공양에 참가하는 백제 관리들의 실태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유물 사진 중 금제소형판을 분석한 결과, 명문에 "'중부 덕솔이 금덩어리 1개를 바쳤다(中部德率支栗施金壹枚)'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19일 밝혔다.

이 교수는 "공양 참가자의 직위가 있는 기록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이를 통해 관료 중에서 4급 인물이 사리 공양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출토된 은제관식 2개를 분석하면서 "한 개는 매우 정교하게 세공돼 있고, 다른 하나는 정교함이 떨어지는 점에 비춰, 1,2,3급이 착용하는 은제관식과 4,5,6급이 차는 은제관식으로 나눠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주서(周書)에는 백제 16개 관리 등급 중 6등급까지는 머리에 은제관식을 꽂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청동합은 발견 당시 부식이 심해 개봉이 미뤄졌다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보존 처리를 실시하면서 처음 내부를 드러냈다. 2010.5.26
합 안에서는 금제구슬 370여점을 비롯해 금제고리, 금제소형판 등 많은 양의 금 제품과 유리 구슬, 진주, 공옥 등 총 48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청동합은 총 6개로, 직경 5.9~8.3㎝, 높이 3.2~4.6㎝의 둥글넓적한 형태다.
합 안에 담긴 보물들은 부처님께 시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번 합 뚜껑에서 발견된 명문으로 봐 달솔(達率ㆍ백제 16관등 중 제2품)인 목근이라는 사람이 시주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제 구슬 등은 화사한 빛을 그대로 간직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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