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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접쇠 도검과 조선시대 造劒式 백제 | 百濟




-수촌리유적 환두대도(環頭大刀) 복원-

글ㅣ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정광용 교수

 

 아래 [그림 1]은 천안 용원리유적의 대도(大刀)의 사진이며, [그림 2]와 [그림 3]은 천안 용원리유적 대도의 분석사진이다. [그림 2]는 칼날 부위 미세조직(微細組織)으로 밝고 어두운 부분이 층을 이루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탄소함량이 적은 괴련철을 여러 번 접고 두들겨 단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는 칼 날 부위의 미세조직으로 마르텐사이트(martensite) 조직이다. 이 조직은 탄소함유량 0.85%인 강을 높은 온도에서 물에 급랭시켜 얻어지는 조직으로,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강도를 지니고 있다.

[그림 1] 천안 용원리유적 대도(大刀)


[그림 2] 大刀 등, 여러 겹의 단접선이 보이는 미세조직



[그림 3] 大刀 칼날, 마르텐사이트 미세조직
 

 백제의 기술자들은 탄소 함유량에 따른 철 소재의 성질변화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탄소량을 조절하여 강 소재를 생산하는 방법과 열처리(熱處理)방법을 응용하여 강도와 인성이 매우 우수한 철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수촌리유적에서 출토된 은입사환두대도는 탄소함량이 적은 괴련철을 여러 번 접어 성형가공한 다음, 탄소함량을 조절하여 강도와 인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담금질처리 하였다. 특히 고리부분에는 은(銀)으로 물결무늬 모양인 파상문(波狀紋)을 입사(入絲)하였다.

 

 ‘입사’란 철이나 청동과 같은 금속에 빛깔이 다른 금속을 끼워 넣어 색조의 대비를 이루고, 문자나 문양을 내어 꾸미는 기법을 말한다. 현존하는 삼국시대 최초의 입사기술은 백제 칠지도(七支刀)에 나타난다. 백제에서 만들어 일본에 하사(下賜)한 칠지도는 현재 일본 나라현(奈良縣) 텐리시(天理市) 이소가노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입사유물은 백제의 유물인 천안 화성리 유적의 은입사당초문환두대도(銀入絲唐草文環頭大刀)로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천안 용원리, 공주 수촌리, 청주 신봉동, 서산 부장리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입사기술은 중국의 입사기법을 영향을 받아 처음 도입된 시점은 낙랑으로 보이며, 가장 먼저 백제에서는 4~5세기에서 나타나고, 가야에서는 5~6세기, 신라는 6세기에 나타난다. 즉, 금속에 금, 은, 동을 상감하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백제시대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림 4] 공주 수촌리유적 은입사환두대도



[그림 5] 공주 수촌리유적 은입사환두대도 복원모습

 

환두대도는 사회 서열을 나타내는 위의구로서 왕·귀족·수장 또는 군사지휘자 등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특히 당대 최고의 장인만이 할 수 있는 금속공예기술(주조, 단조, 열처리, 입사, 목공 등)을 집대성한 종합예술작품 이다.


백제시대 수촌리유적 환두대도([그림 4])를 모델로 최고의 장인만이 할 수 있다는 은입사환두대도를 복원([그림 5])하였다. 그 당시의 소재와 전통적인 제작방법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였지만, 충분한 사전조사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가능한 전통적인 방법과 가깝게 복원하였다.


 “서동”이 만들고자 하였던 칼을 복원하면서 축적된 기술은, 현재의 전통문화산업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며, 문화재의 복원기술과 과학기술을 적용한 문화재의 보존·복원연구 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족 정체성 확립 및 우리민족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보존과학과 정광용 교수
 게시일 2007-07-20 09:07:00.0 
 문화재청/문화재발견/주간소식지 제43호 






단검 제작법 고문서

"단검은 심성수양ㆍ의기함양 상징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시대에 도검(刀劍)은 어떤 이론에 따라 어떻게 제작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가 발굴됐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조혁상 씨는 도검 중에서도 단검을 제작하는 방법을 기록한 '조검식'(造劒式)이라는 고문서를 찾아냈다고 14일 말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고문서에 의하면 단검은 1년 중 가장 무더운 여름 60일 동안 깊은 산 속에서 제작한다.

나아가 단검의 치수와 디자인을 정하는 데는 "우주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주역(周易)과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참위설(讖緯說), 귀문둔갑(鬼門遁甲) 이론을 적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조씨는 덧붙였다.

더불어 칼날에는 북두칠성에 보성(輔星)이라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두 별자리를 보탠 북극구성(北極九星)을 금입사(金入絲)하고 단검 손잡이 위 손막이인 코등이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구멍을 뚫어 천상의 기운을 칼 속에 응축시키고자 했다는 사실도 이 문서 분석 결과 드러났다.

칼집은 거북 등껍질이 재료인 투명한 대모(玳瑁)를 사용하고 주옥과 칠보로 겉을 장식했다.

조검식은 또한 단검을 소장한 사람이 그것을 항상 좌측 겨드랑이에 패용하고, 매번 갑자일(甲子日)이나 단검을 제작한 날에는 칼을 갈아 빛을 내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칼날을 빛내는 일이 끝나면 육갑일(六甲日) 한밤중에 북쪽을 향하여 칼을 두고는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워서 단검의 영험함을 지켜야 한다고 문서는 덧붙였다.

"내 검은 천상의 보물이니, 원군(元君)께서 내려주셨네. 천 번을 두들겨 철(鐵)로 만들고 만 번을 두들겨 강(鋼)으로 만들었으니, 원기(元氣)에 부응하고 천지에 호응하네. 땅에 그어 판을 그리면 음양을 변화시키고, 문호(門戶)에 출입하면 온갖 마왕(魔王)을 항복시키니, 휘두르며 향하는 그 어떤 물건도 당해내지 못하네. 북극 9성이 나로 하여금 악한 무리를 쫓아내게 하니, 하늘이 준 것을 공손히 받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영원히 제거하리."

원군(元君)이란 도교의 천상 세계를 다스리는 지위가 매우 높은 신선으로, 동진시대 도사인 갈홍(葛洪)의 도교신학 이론서인 포박자 내편(抱朴子內篇) 중 금단편(金丹篇)에는 "원군이란 대신선(大神仙)으로 능히 음양을 조절하고 귀신을 부려 비를 뿌리게 하며 아홉 용(龍)과 12마리 백호(白虎)를 부려 타니 뭇신선이 모두 그에게 예속한다"고 나와있다.

조씨는 "이를 통해 조선시대 단검이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소장자 자신의 심성 수양과 의기 함양을 상징하는 기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문서에 나타난 조선시대 단검의 명확한 형태 규명 작업은 국내 최고의 도검전문가로 꼽히는 경인미술관 이석재 관장이 맡아 하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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