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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상운리 유적 보고서 발간 백제 | 百濟



첫째, 상운리는 현재까지 발견된 마한계 분묘 중 최대 규모(분구묘 30기, 매장주체부 163기)일 뿐만 아니라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고고학사에 기리 남을 유적이다. 상운리 분구묘군는 야트막한 구릉을 공동묘지로 기획한 곳이지만 정치 ․ 사회 ․ 문화 ․ 기술 ․ 이념 등 당시 사회체제가 압축되어 있는 ‘고고학적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상운리 분구묘는 토기류 320여 점, 철기류 500여 점, 옥류 6,000여 점 등 약 7,000여 점이 조사되어 호남지역에서 최고의 출토량을 자랑한다.

토기류土器類에는 마한 고유의 스타일이 유지되고 있어, 상운리 집단이 아직 완전한 백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토기 입술부분의 일부를 깨고 땅 속에 매납한 흔적을 확인하여 당시 상장의례의 단면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철기류鐵器類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호남지역에서 대량으로 출토되는 행운이 따랐다. 특히 철기생산의 증거라 할 수 있는 단야구가 약 20세트 정도가 확인되어, 우리나라에서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단야구 중 최대 수량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구슬류玉類는 무려 6,000여 점이나 확인되었다. 이러한 출토량은 마한 사람들은 금이나 은보다 ‘구슬을 더 귀한 보배로 여겼다’는『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기사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구슬은 환옥, 곡옥을 비롯하여 금박옥, 마노옥 등이 확인되었다.

셋째, 다종다양한 출토유물과 대량의 분구묘, 그리고 관련 유구들과의 종합적인 비교를 통해 기원전 100년~기원후 500년까지 총 4단계 세부 7단계의 상운리 세부편년을 수립하였다.

마한馬韓 최대 규모의 분묘 유적인 상운리는 근초고왕의 남정으로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는 4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완주지역에서 마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호남지역에서 마한이 백제로 전환되는 고고학적 ․ 역사적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대표 연구논문]

김승옥, 2009,「분구묘의 인식과 시공간적 전개과정」,『한국 매장문화재 조사연구방법론』5,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위논문]
이택구, 2006,『한반도 중서부지역 마한 분구묘 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승태, 2008,『금강유역 원삼국~삼국시대 옹관묘 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미령, 2008,『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옥 연구 -3~5세기 분묘유물 출토 옥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보람, 2008,「금강유역 3~5세기 환두도 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학술지 게재]
이택구, 2008,「한반도 중서부지역의 마한 분구묘」,『한국고고학보』66, 한국고고학회.
이보람, 2009,「금강유역 원삼국~삼국시대 환두도 연구」,『한국고고학보』71, 한국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
김승옥·이택구, 2004,「완주 상운리유적 발굴조사 개보」, 제28회 한국고고학회 전국대회 발표
이진희, 2005,「완주 상운리유적」, 제3회 호남고고학회 유적사례발표.
변희섭ㆍ김미령, 2006,「완주 상운리유적 나지구 발굴조사개보」, 제4회 호남고고학회 유적사례발표.
김승옥·이승태, 2006,「완주 상운리유적의 분구묘」, 제49회 전국역사학대회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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