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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타케루 대왕 | 獲加多支鹵 大王 토론자료

획가다지로 대왕 | 獲加多支鹵 大王
와카타케루 대왕



獲 : 획 얻을 (이체자)     
加 : 가 더할                 
多 : 다 많을                  
支 : 지 가를                  
鹵 : 로 소금                 


   
사이타마 이나리야마 고분 출토

辛亥年七月中記乎獲居臣上祖名意冨比垝其児多加利足尼其児名
신해년칠월중기호획거신상조명의부비궤기아다가리족니기아명

加利獲居其児名多加披次獲居其児名多沙鬼獲居其児名半弖比
테기가리획거기아명다가피차획거기아명다사귀획거기아명반테비

其児名加差披余其児名乎獲居臣世世為杖刀人首奉事来至今獲
기아명가차피여기아명호획거신세세위장도인수봉사래지금획

加多支鹵大王寺在斯鬼宮時吾左治天下令作此百練利刀記吾奉根原
가다지로대왕사재사귀궁시오좌치천하령작차백련이도기오봉근원

* :  이 칼의 주인은 호획거신(乎獲居臣)이며 의부비궤(意富比垝)의 8대손이다.              

신해년 7월에 기록하다. 호획거신(乎獲居臣 오와케 노 오미)은 선조를 모셨다. 
(최초 조상님의) 이름은 의부비궤(意富比垝 오호 히코).
그 아들은 다가리족니(多加利足尼 다카리 스쿠네)이다. 그 아들 이름은 테요카리 와케 (弖已加利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다카하시 와케 (多加披次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타사키 와케(多沙鬼獲居).
그 아들 이름은 하테히(半弖比)다.
그 아들 이름은 카사히요(加差披余).
그 아들 이름이 호획거신(乎獲居臣 오와케 노 오미)다.

나는 세세토록 큰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 우두머리가 되어, 봉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와카타케루(獲加多支鹵)대왕의 사원(寺) 시키(斯鬼)의 궁전에 있을 때, 나는 천하를 보좌하고 백번 단련한 칼을 만들도록 하여 내가 봉사한 근원을 적는다.







*한자 풀이
辛亥年 : 신해년 , 일본에서는 471년이라 한다.
中 : ~에 . 한문법이 꽤 신라 향찰과 닮았다 . 中의 한자 뜻은 없고 처격을 나타내는 향찰 표기법이다.
      신라 향찰 표기에서 처격은 中, 良中으로 나타난다(-애/-에. 이두의 독음은 ‘-ᄒᆡ, 아ᄒᆡ’)
獲加 : 획가 | 와카 / 각카  :  통채로 waka로 읽는 것은 웅략의 이름 와카타케에 맞추다보니 그런것. 젊다(어리다)는 뜻.  
       단독으로  獲(얻다) 로 쓰였다면 음독: クァク、カク、ワク 훈독:える.
支  :   시 / 케 : 支를 /케/ 등으로 읽는것은 아주 오래된 한자음을 사용한  반영이다.
        (ex 신라 가야의 干岐=干支 처럼 支는 처음엔 /기/로 읽히다가 나중엔 /지/ 등으로 읽게 되었다.)
鹵    : 로/ 루  : 실제로는 鹵의 글자가 아니라 口안에 ヌ비슷한 글자가 들어가 있다. 사전에는 없는 글자로 이체자로 보고있다.
                    이것을 吳音 ru로 읽는것은 웅략의 이름에 짜맞추어 예측한 방식으로 , 최초 에타후나야마 고분의 철검을 
                    獲***歯라고 읽은것만 봐도 알수있다. 
獲居 : 획거 | 카키 / 와케 : 관직 호칭.   일본서기에 짜맞추면 ~別(와케)에 해당된다.
意富 : 의부 | 오호 : 크다의 뜻 (ex 일본서기에서 의부가라 왕자 |意富加羅王子 : 대가야 왕자)
比垝 : 비궤 | 히코 :  ~어르신 따위를 지칭하는 호칭 (ex 일본서기 습진언襲津彦(스즈히코),백제기 인용의 사지비궤|沙至比垝)
                            일본서기 백제기 인용 기록들의 한자들이 꽤 일치한다.
足尼 : 족니 | 수쿠네 : ex 일본서기에서는 ~宿禰 (ex 武内宿禰)의 한자로 나온다,
                              칼에서 일본 귀족의 호칭 3개가 시간적인 순서대로 변천되는것이 나온다  히코->스쿠네->오미
弖 : 테  : 이 글자는 일본식인듯 . 뜻은 모르겠다
左治天下 : 중국고전의 문구로 백부나 동생에 해당되는 친권자가 통치를 보좌하는 행위를 佐治라 한다.
            (무왕은 은나라를 토벌하고 얼마되지 않아 사망했는데 홀로 남겨진 어린 성왕이 천자가 되니 주공이 대신 정사를 펼쳤다)
              따라서 이칼의 주인은 대왕 다음의 권력자이며 그 친족이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寺  :  지 :  논란의 부분. 시키궁안의 절. 또는 대왕의 중국풍 이름이라는 가설도 있다.
斯鬼宮 : 사귀궁 | 시키 宮:  대왕이 살던 궁전 이름. 지명 연구가들에 의하면 師木 , 옛 나라현의 시키궁(磯城宮)





대장장이 오오히코(意冨比垝)집안의 내력에 관해서..

이 칼에 쓰이는 단어를 보면 일본서기보다 백제삼서에 나오는 호칭들이 보인다.
칼의 ~比垝는  일본서기에서 彦으로 나오지만 백제기엔 比垝로 똑같이 전해지고 있다. 즉 백제와 같은 한문법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본서기에 오오히코(意冨比垝=大彦) 집안은 7가문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도 비슷한 것이 쓰여있다. 

일본서기 : 孝元7年、兄大彦命は、是、阿倍臣、膳臣、阿閉臣、狹々城君、筑紫国造、越国造、伊賀臣、凡そ七族の始祖なり
신찬성씨록 : 右京皇別条、杖部造は、孝元天皇の皇子、大彦の後裔。




칼에 쓴인 대왕 획가다지로는 누구?

처음에는 에타후나야마 고분에서 "獲▒▒▒鹵 大王"이라는 명문이 쓰인 칼이 나왔지만, 이런 이름은 일본서기에 나오지 않아
누구인지 논란이 많았다. 鹵 비스므리한 글자를 歯로 판독해  여러 일본서기의 왕들 특히 反正天皇(紀…多遅比瑞歯別 타지히노미야미즈하、記…蝮之水歯別命)이 거론되었다
그러다 사이타마의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이 나오고 대왕의 풀네임이 밝혀지면서 하룻밤만에 유라크천황(야마토 시호: 오오하츠세노 와카타케)이 그 대왕이라 하였다.
일본에서도 검의 대왕이 웅략이다 아니다 말이 많지만, 만세일계 원칙에 따라 웅략으로 밀고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웅략은 하츠세로 長谷(ハツセ)の朝倉宮(古事記) , 泊瀬(ハツセ)の朝倉宮(日本書紀)살던 궁전이 틀리고
고분 피장자의 시키궁은 일본서기에서 찾으면 師木の水垣宮(崇神天皇), 師木の玉垣宮(垂仁天皇)즉 師木에 해당된다.
따라서 칼에 쓰여있는 시키궁의 와카타케루는  일본서기 하츠세궁의 와카타케와 동일인물이 될수없다고 보는데
아무튼 후보 인물들을 살펴본다.

재위  (456~479) 웅략천황 |雄略天皇의 시호 大泊瀬 幼武 (오오하츠세 노 와카타케)  , 若建命(와카타케 노 미코토)
재위  (478~502) 왜왕 武
재위   (?)   일본무존 |日本武尊 (야마토 타케루 노 미코토)  신화의 인물

일본인들은 와카타케루를 웅략천황(幼武)으로 비정하고 송서의 왜왕 武까지 연결시켜  모순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딱히 송서의 倭5王(413년∼502년)들은 일본서기의 누구라고 확정할수 없다.
송서와 비교하면 일본서기에선 천황들은 형제 관계도 틀리고 두명의 더 존재하고 있어
 일본 고대사에서는 이 문제가 비미호의 야마대국 위치 논란과 함께 최고의 논쟁거리이다..
송서의 武(478~502년)를 일본서기의 웅략(幼武)으로 본다고해도 웅략천황은 456년∼479년 재위했으므로
통치기간이 틀리고 중국에 사신을 보내 조공한 기록도 없다.



宋書를 보면 같은시대 왜왕 武의 행적은 이렇다.
원문 http://www.hoolulu.com/zh/25shi/06songshu/t-097.htm

왜왕 武의 행적 요약

1. 왜왕 武는 사신을 보내 478년 야마토,백제,신라,임라,가야,진한,모한 7국제군사, 안동대장군을 요청한다.
2. 왜왕 武의 선왕들은 동쪽으로 원시인 55국, 서쪽으로 66국, 바다건너 북쪽의 95국을 평정하였다 한다.
3. 황제에 조공하려고 백제를 거치는데 매번 고구려가 방해해 막히고,갑자기 아버지와 형이 죽어 상중이라 고구려와 싸울수 없다.
4. 황제의 은덕을 받는다면 父兄의 뜻을 이어 고구려를 이길것이라 결의를 다지고 있다
5.  이에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마한)  등의 6국제군사  안동장군을 내렸다
6.  梁書에 502년 진동대장군 칭호를 왜왕 武에게 내린다.

웅략은 조공을 게을리한 신라를 스스로 토벌하려고 했지만, 神이 반대해 장군들만 파견. 고구려의 침공을 받은 백제의 부흥에 노력한 왕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웅략의 일화
廿三年夏四月、百済文斤王薨。天王、以昆支王五子中、第二末多王、幼年聡明、勅喚内裏。親撫頭面、誡勅慇懃、使王其国。仍賜兵器、并遣筑紫国軍士五百人、衛送於国。是為東城王。是歳、百済調賦、益於常例。筑紫安致臣・馬飼臣等、率船師以撃高麗。

"백제의 문주왕이 죽어 , 천황은 곤지왕의 5명의 아들 중에서 둘째의 말다왕이 어려서도 총명하니 대궐로 불렀다.
친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길 그 나라(백제)의 왕으로 한다. 무기를 주어 치쿠시국의 군사 500명을 보내 그 나라에 데려다 주었다.  그가 동성왕이다. ...."

상표문이나 일본서기를 보면 이때의 왜왕 武는 백제 조정과 꽤 깊은 관계에 있고, 서해 해상권을 장악한 고구려와 일전을 치룰듯한 기세를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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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아픈 일본역사를 떠나 고고학으로..

이 와카타케루(獲加多支鹵)라는 대왕은 다른 고분에서도 발견되는데 백제와 관계가 깊은 에타후나야마 고분이다.
일본에서는  에타후나야마 고분의 유물들을 일관해서 모두 국보로 관리하고 있다.
고분은 고대 야마토 중앙 정부에서 머나먼 큐슈 구마모토현 다마나군 기쿠스이 마을 시골에 자리잡고 있어 도굴피해를 면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땅 소유주가 유물을 빼돌려 박물관에 팔아먹은 증거들이  있다.

에타후나야마 고분의 출토품들

 + 
에타후나야마(江田船山) 고분 출토 금동관과 백제 관모
둘이 합쳐서 쓰는것으로 나주금동관 형식과 비슷하다.

 
가장 후기에 등장하는 압정(리벳식)으로 박은 말끔한 횡장판갑이다. 세모꼴의 첨각부주 투구도 나왔음.
이것은 최소 5세기 중기 이후 또는 6세기 이후의 고분임을 증명한다.

삼두령 및 환두대도, 금제 귀걸이, 마구 ,거울 ,구슬 등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 獲▒▒▒鹵 大王] 명문이 박힌 철검 . 
전문
台(治)天下獲□□□鹵大王世、奉事典曹人名无□(利ヵ)弖、八月中、用大鉄釜 并四尺廷刀、八十練、□(九ヵ)十振、三寸上好□(利ヵ)刀、服此刀者、長寿、子孫洋々、得□恩也、不失其所統、作刀者名伊太□(和)、書者張安也(東野治之)


이 검의 해석을 보려면 http://blog.yonhapnews.co.kr/ts1406/post/109394/ 참고하길.

이 지역은 쿠마소(熊襲)로 불리던 곳으로 古일본사에선 정벌의 대상이 되는 토지였다. 아무튼 이런곳까지 야마토 대왕의 이름이 나오고 있으니 일본에서는 큐슈 일대까지 강대한 힘이 뻗친 증거라 한다.
대부분 위세품은 대가야(大伽耶) 계통의 유물이지만, 신발과 관모의 성격으로 볼때 백제와 관련이 깊다. 게다가 [獲▒▒▒鹵 大王]은 이나리야마 철검에서  獲加多支鹵로 확인되기 때문에 이 대왕은 와카타케루가 분명하다. 일본 고분시대 하니와를 보면 대략 가야식 왕관을 5세기 중반부터 자체적으로 소화해 도입하고 있고 ,신라식 금제관모의 변형 관모들도 몇개 있지만 에타후나야마 처럼 완벽한 백제식 관모가 나온 고분은 일본에서 유례가 없다. 와카타케루의 야마토 조정에 봉사한 인물이 백제 관모를 쓰고 묻혀있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이곳 큐슈 지역 참고 자료.
수서(隨書)에 나온 수나라 사신이 왜국을 가는 노선 , 이 사신은 실제로 아소산이 불타는 것을 보고 기록했다.
度百濟,行至竹島,南望<身冉>羅國,經都斯麻國,乃在大海中。又東至一支國,又至竹斯國,又東至秦王國,其人同于華夏,以為夷洲,疑不能明也。又經十余國,達於海岸。自竹斯國以東,皆附庸於倭

백제 -죽도(독도:돌섬? 남해의 무인도인듯) - 라국(가야쪽?) - 도사마국(쓰시마?)- 큰바다- 동쪽으로가면-일지국-죽사국-진왕국(그나라 사람들이 중국인과 같다)-10나라의 해안을 따라가니 죽사국의 동쪽에 이른다 - 倭에 도착
 


......생각날때마다 수정중.


덧글

  • 講壇走狗 2007/10/10 22:44 # 답글

    "[身冉]羅"는 聃羅, 즉 耽牟羅, 耽羅라고도 불렸던 제주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都斯麻는 쓰시마라는 것이 정설이고, 一支는 이키(壹岐), 竹斯는 쓰쿠시(筑紫)일 겁니다. 그리고 사지비궤는 "沙至比跪(사치히코)"입니다.
  • 講壇走狗 2007/10/10 23:05 # 답글

    弖는 氐의 이체자로, 일본에서는 te의 음을 나타내는 가나로 전용되었습니다. 隻(=獲)加多支鹵는 wakatakeru로 읽는 것이 정설로서, 隻加는 waka를 적기 위한 연합가나(連合假名)로 보입니다. 鹵는 吳音이 ru이기 때문에, 가능한 독음입니다.
  • 밥로스 2007/10/10 23:15 # 답글

    호.. 과연 죽사 쓰쿠시 비슷하네요. 매번 설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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